맨위로가기

케네디 라운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케네디 라운드는 1964년 5월 제네바에서 시작되어 1967년 6월 최종 합의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제6차 다자간 무역 협상이다. 미국, 유럽 경제 공동체 등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여 평균 35%의 관세 인하와 약 3만 품목에 대한 관세 양허를 이끌어냈으며, 덤핑 방지 협정 및 국제 곡물 협정 체결 등 비관세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이전 라운드와 달리 선형 협상 방식을 도입했으나, 농업 정책 및 관세 불균형 문제로 인해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기도 했다. 케네디 라운드는 GATT 역사상 최대 성과를 기록했지만, 미국 의회의 일부 조항 폐지로 인해 미국의 무역 협상 신뢰도가 훼손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67년 체결된 조약 - 우주 조약
    우주 조약은 외계 공간의 평화적 이용과 탐사를 위한 원칙을 담고 있으며, 핵무기 및 대량 살상 무기 배치를 금지하고 우주 비행사를 인류의 사절로 간주하며, 1967년에 발효되어 115개 국가가 당사국이다.
  • 국제 무역 - 보호무역
    보호무역은 정부가 국내 산업을 외국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세, 수입 할당량, 기술 보호, 외국인 투자 제한 등 다양한 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에 대한 논쟁이 있고 최근 주요 국가에서 강화되는 추세이다.
  • 국제 무역 - 태평양 동맹
    태평양 동맹은 2011년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대통령들이 결성한 지역 경제 협력체로, 아시아를 지향하며 자유 무역 증진을 목표로 라틴 아메리카 GDP의 약 35%를 차지하는 경제 블록이다.
케네디 라운드
개요
종류무역 협상 라운드
소속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ATT)
시작1964년
종료1967년
장소제네바
국가스위스
참여국62개국
이전 라운드딜런 라운드
다음 라운드도쿄 라운드

2. 역사적 배경

GATT의 제6차 다자간 무역 협상인 케네디 라운드는 1962년 1월 미국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협상이 시작되기 전인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해 협상의 시작을 보지 못했다.[1]

딜론 라운드까지는 양자 간 협정을 누적하는 방식으로 관세 인하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1961년 가을 각료 회의에서 "관세 일괄 인하"라는 새로운 구상이 제기되었고, 1963년 5월 각료 회의에서 협상의 기본 원칙이 합의되었다.[19][20] 이후 협상 규칙을 제정하고 협상 운영을 담당하는 "무역 협상 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21] 1964년 5월 4일 케네디 라운드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22][23]

2. 1. 배경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1957년 로마 조약에 의해 창설되면서 유럽의 무역 통합이 이루어지자, 미국은 자국 제품이 유럽 시장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했다.[3][4]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무역 확대법 통과를 추진하여 대통령에게 관세 인하 권한을 부여했다.[5] 이 법안에는 무역 개방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과 근로자에게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조항도 포함되었다.[6]

딜론 라운드까지의 양자 간 협정 방식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에 따라, 1961년 가을 각료 회의에서 "관세 일괄 인하" 구상이 제기되었다.[18] 1963년 5월 각료 회의에서는 다음의 기본 원칙이 합의되었다.[19][20]

  • 관세 인하는 균등 일률 인하를 원칙으로 한다.
  •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한다.
  •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협상한다.
  • 개발 도상국에 대해서는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후 "무역 협상 위원회"가 설치되어[21] 1964년 5월 4일부터 케네디 라운드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22][23]

2. 2. 협상의 시작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1957년 로마 조약에 의해 창설되면서 유럽의 무역 통합이 이루어지자, 미국은 자국 제품이 유럽 시장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했다.[3][4]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무역 확대법 통과를 추진했는데, 이 법은 대통령에게 관세를 대폭 인하하거나 인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5] 이 법안에는 무역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업과 근로자를 지원하는 조항도 포함되었다.[6]

GATT의 제6차 다자간 무역 협상인 케네디 라운드는 1962년 1월 케네디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 제창되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하여 협상의 시작을 보지 못했다.

딜론 라운드까지는 양자 간 협정의 누적 방식으로 관세 인하 협상이 이루어졌지만,[18] 이러한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1961년 가을 각료 회의에서 더욱 과감한 "관세 일괄 인하" 구상이 제기되었고, 1963년 5월 각료 회의에서 협상의 기본 원칙이 합의되었다.[19][20]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관세 인하는 균등 일률 인하를 기본으로 하고, 예외는 최소화한다.
  •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하며, 농산물 수출 증대를 위한 조건을 마련한다.
  •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협상한다.
  • 개발 도상국의 수출 장벽 완화에 노력하며,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협상 운영을 담당할 "무역 협상 위원회"가 설치되었고,[21] 1964년 5월 4일 케네디 라운드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22][23]

3. 협상 과정

케네디 라운드는 1964년 5월 4일 국제 연합 제네바 사무소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8] 이 회담은 관세 인하를 주요 목표로 삼은 마지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라운드였다.[8] 그러나 덤핑과 같은 비관세 문제, 즉 회사가 자국 시장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행위를 다룬 최초의 GATT 라운드이기도 했다.[9]

특히, "선형" 협상 방식을 개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전의 GATT 라운드의 품목별 협상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참여 국가의 모든 관세에 대해 일정 비율의 일괄적인 인하를 제안했다. 미국, 유럽 경제 공동체, 일본, 영국 등 이른바 "브리지 클럽" 회원국들이 협상을 주도하며 선형적 관세 인하를 제안했다.[3] 6개의 다른 유럽 국가들이 선형 인하에 동참했다. 다른 36개국은 비선형 참여국이었으며, 이러한 차이로 인해 협상 과정에서 긴장이 조성되었다. 선형 국가들은 비선형 국가가 제안된 예외 사항을 처리하기 위한 "대결과 정의"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2]

따라서 케네디 행정부는 원래 6개월 안에 라운드를 마무리할 것을 고려했지만, 지연과 느린 진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선형과 비선형의 분열 외에도, 농업 정책과 관세 불균형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다. 미국은 유럽이 산업 관세로 넘어가기 전에 농업 관세 인하에 동의하기를 원했지만, 교착 상태로 인해 미국은 물러서야 했다.[12] 낮은 기대치만이 농업 협정 체결이 실패로 간주되는 것을 막았다.[3][4] 또한, 평균 18%의 높은 미국 관세와 평균 12%의 중간 수준의 EEC 관세에 대한 동등한 비율의 인하는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10]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재승인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1967년 7월 1일의 마감일은 케네디 라운드의 실질적인 마감일이 되었다.[12] 마라톤 회의 후, 협상가들은 1967년 5월 15일 자정 기자 회견에서 만족스러운 합의를 발표했다. 최종 협정은 1967년 6월 30일에 서명되었다.[11]

딜론 라운드까지는 양자 간 협정의 누적으로서의 일반적인 관세 인하 협상이 실시되었지만,[18] 이 전후로 기존 협상 방식이 거의 한계에 달해 충분한 관세 인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1961년 가을에 열린 각료 회의에서는 향후 세계 무역의 더욱 확대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더욱 대담한 "관세 일괄 인하" 구상이 제기되었다. 1963년 5월에 다시 열린 각료 회의를 통해 협상의 구체적인 정비가 이루어졌으며, 협상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이 합의되었다.[19][20]


  • 관세 인하는 균등 일률 인하를 기초로 하며, 예외는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최소한의 품목에 한정한다. 또한, 각국 간의 관세율에 대폭적인 격차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 인하 규칙을 따른다.
  • 협상은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산품을 대상으로 하며, 농산물에 대해서는 그 수출 증대를 위한 합리적인 조건을 창설한다. 또한, 농산물 중 곡물, 육류, 낙농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세계 상품 협정의 체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 관세 이외의 무역 장벽(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협상한다.
  • 개발 도상국의 수출에 대한 장벽의 경감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며, 개발 도상국에 대해서는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보다 구체적인 협상 규칙을 제정하고, 실제 협상 운영을 담당하는 중심 기관으로서 새롭게 "무역 협상 위원회"의 설치가 결정되었다.[21] 상기 위원회를 통해 1963년 6월 이후 구체적인 협상 규칙의 검토가 진행된 후, 1964년 5월 4일부터 6일까지 다시 각료급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5월 4일을 기해 케네디 라운드를 정식으로 발족시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에 따라 1967년 6월 30일까지 4년여에 걸친 케네디 라운드가 성립되었다.[22][23]

4. 주요 성과

미국은 85억달러 상당의 상품에 대해 관세 양허를 했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외국 관세 양허는 81억달러를 포함했다. 비농산물 과세 수입의 64%가 미국 측의 일괄적인 관세 인하에 의해 적용되었으며, 평균 관세 인하율은 35%였다. 외국 관세 인하는 평균 34%였으며, 비농산물 과세 수입의 48%를 적용했다.[12]

비관세적 성과에는 1967년 GATT 반덤핑 규정 제정이 포함되었으며, 이는 덤핑 혐의 협상을 위한 절차적 틀을 제공하고 GATT의 원래 제6조를 확대했다.[13] 이 라운드는 개발도상국에게도 성공으로 볼 수 있다. "무역 및 개발" 섹션이 GATT 헌장에 추가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발도상국을 상호주의 원칙에서 면제하는 것이었다. 또한 원자재 가격 안정화를 요구했다.[14]

농산물 곡물 협정은 더 높은 최저 거래 가격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식량 원조 프로그램을 제공했다.[15] 상품 협상에서도 일부 진전이 있었다. 장기 면직물 협정을 3년 더 연장했고, 철강, 알루미늄, 화학 물질, 펄프, 제지 관세 협상을 위한 틀을 마련했다.[15]

1967년 6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균 약 35%의 관세 인하, 약 3만 품목에 대한 새로운 관세 양허 등이 합의되어, 6차례의 협상 중 최대 성과를 거두었다. 덤핑 방지 협정, 화학 제품 협정[24]도 체결되었다.

개발 도상국에 대한 식량 원조를 규정한 식량 원조 규약을 포함하는 국제 곡물 협정이 성립되어, 농업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5. 비판

케네디 라운드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보호주의적 비판이 제기되었다. 2000년 WTO 탈퇴 투표에서 잭 메트칼프 의원은 케네디 라운드를 "미국인의 생활 수준이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언급했으며, 이와 같은 모든 다자간 협정은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을 매료시키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만, 미국의 중심부에서는... 기존 미국 일자리를 희생하면서 국제 질서를 증진하려는 추가적인 노력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16] 그러나 이 라운드는 경제 자유주의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는데, 이들은 관세 인하가 시사하는 것만큼 자유주의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정치적 우려로 인해 국내 산업을 무역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관세 장벽을 세웠다고 믿는다.[17]

6. GATT/WTO의 다자간 무역 협상

GATT의 제6차 다자간 무역 협상으로, 1962년 1월 미국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 제창된 데서 유래하여 케네디 라운드라고 불린다. 다만, 케네디 대통령은 협상의 시작을 보지 못하고 1963년 11월 22일 흉탄에 쓰러졌다.

GATT의 제5차 관세 인하 협상인 딜론 라운드까지는 양자 간 협정의 누적으로서 일반적인 관세 인하 협상이 실시되었지만[18], 이 전후로 기존 협상 방식이 거의 한계에 달해 충분한 관세 인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1961년 가을에 열린 각료 회의에서는 향후 세계 무역의 더욱 확대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더욱 대담한 "관세 일괄 인하" 구상이 제기되었다. 1963년 5월에 다시 열린 각료 회의를 통해 협상의 구체적인 정비가 이루어졌으며, 협상의 기본 원칙으로서 다음 사항이 합의되었다[19][20]


  • 관세 인하는 균등 일률 인하를 기초로 하며, 예외는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최소한의 품목에 한정한다. 또한, 각국 간의 관세율에 대폭적인 격차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 인하 규칙을 따른다.
  • 협상은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산품을 대상으로 하며, 농산물에 대해서는 그 수출 증대를 위한 합리적인 조건을 창설한다. 또한, 농산물 중 곡물, 육류, 낙농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세계 상품 협정의 체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 관세 이외의 무역 장벽(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협상한다.
  • 후진국의 수출에 대한 장벽 경감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며, 후진국에 대해서는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후 보다 구체적인 협상 규칙을 제정하고, 실제 협상 운영을 담당하는 중심 기관으로서 새롭게 "무역 협상 위원회"의 설치가 결정되었다[21]

상기 위원회를 통해 1963년 6월 이후 구체적인 협상 규칙의 검토가 진행된 후, 이듬해 1964년 5월 4일부터 6일까지 다시 각료급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5월 4일을 기해 케네디 라운드를 정식으로 발족시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에 따라 1967년 6월 30일까지 4년여에 걸친 케네디 라운드가 성립되었다[22][23]

본 라운드의 협상에는 전 라운드의 26개 국가 및 지역을 크게 넘어선 62개 국가 및 지역이 참가했다. 최종적으로는 1967년 6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균 약 35%의 관세 인하, 약 3만 품목에 대한 새로운 관세 양허 등이 합의되어, 지금까지 6차례의 협상 중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덤핑 방지 협정, 화학 제품 협정[24]이 체결되었다.

더욱이, 본 라운드에서는 처음으로 농업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이 이루어졌으며, 개발 도상국에 대한 식량 원조를 규정한 식량 원조 규약을 포함하는 국제 곡물 협정이 성립되었다.

GATT/WTO의 다자간 무역 협상은 다음과 같다.

차수개최 년도장소명칭비고
제1차1948년제네바
제2차1949년아느시
제3차1951년토키
제4차1956년제네바
제5차1960년 - 1961년딜론 라운드
제6차1964년 - 1967년케네디 라운드
제7차1973년 - 1979년도쿄 라운드
제8차1986년 - 1995년우루과이 라운드
제9차2001년 -도하 개발 아젠다


참조

[1] 서적 International Economics, 8e https://plus.pearson[...] Pearson Education, Inc. 2020
[2] 웹사이트 GATT and the Kennedy Round https://www.cia.gov/[...] Central Intelligence Agency
[3] 서적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Legal, Economic and Political Analysis, Vol. 3 https://books.google[...] Springer Science+Business Media 2005
[4] 문서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legal, economic, and political analysis, Vol. 1. Patrick Macrory, Arthur Appleton, Michael Plummer.
[5] 웹사이트 19 USC Chapter 7 - Trade Expansion Program http://uscode.house.[...] 2011-02-03
[6] 웹사이트 US Code Title 19, Chapter 7, Subchapter III. Tariff Adjustment and Other Adjustment Assistance https://www.law.corn[...]
[7] 웹사이트 US Code Title 19, Chapter 7, Subchapter II. European Economic Community (repealed) https://www.law.corn[...]
[8] 간행물 Trade Promotion Authority and the Role of Congress in Trade Policy https://docs.google.[...] 2008-02-08
[9] 웹사이트 Anti-Dumping Definition http://www.wto.org/e[...] WTO
[10] 뉴스 World Trade: Toward the Kennedy Round https://web.archive.[...] Time Magazine 1964-03-06
[11] 뉴스 The Cafta Conundrum http://www.economist[...] The Economist 2005-06-16
[12] 논문 The Kennedy Round: A Try at Linear Trade Negotiations https://www.jstor.or[...] 1969-10
[13] 웹사이트 Overview and Compilation of U.S. Trade Statutes http://www.gpo.gov/f[...] 2001-06
[14] 웹사이트 international trade http://school.eb.com[...]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School Edition 2011-02-28
[15] 간행물 Remarks Upon Signing the Kennedy Round Trade Negotiations Proclamation https://books.google[...] Public Papers of 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Lyndon B. Johnson 1967-12-16
[16] 연설 Speech to Congress on H.J. Res 90 http://www.gpo.gov/f[...] 2000-05-04
[17] 논문 The Kennedy Round: Evidence on the Regulation of International Trade in the United States https://www.jstor.or[...]
[18] 학술지 ガット・ウルグアイ・ラウンドの軌跡—農業交渉を中心に— https://www.maff.go.[...] 2021-12-25
[19] 웹사이트 経済に関する諸国際機関との関係 https://www.mofa.go.[...] 外務省 1964-08
[20] 웹사이트 経済に関する諸国際機関との関係 https://www.mofa.go.[...] 外務省 1965-07
[21] 웹사이트 経済に関する諸国際機関との関係 https://www.mofa.go.[...] 外務省 1965-07
[22] 웹사이트 経済に関する諸国際機関との関係 https://www.mofa.go.[...] 外務省 1965-07
[23] 서적 ガット https://kotobank.jp/[...] 小学館
[24] 문서 米国がASP評価(化学品を中心とする一部の品目について、実際の輸入価格ではなく米国の国内販売価格を基準に関税を課す制度)を廃止しその場合日本及びEEC(現在のEU)が追加の関税引き下げを行うという合意。米国議会がASP廃止法を可決しなかったため、発効しなかった。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